CS PhD

2025년 CS 박사 유학 지원 수기

Syphon 2025. 5. 21. 18:01

(이 글은 서울대학교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올린 글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스누라이프에서 저보다 먼저 유학을 떠난 선배님들의 글을 읽으며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미국 박사 유학 준비를 시작한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어느덧 원서 지원부터 인터뷰, 비지팅, 학교 선택까지 마무리하고 이제는 출국을 기다리는 몸이 되었네요.
 
박사 지원 준비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불확실성이었습니다. 이 정도 학점으로 유학이 가능할까? 어떤 랩에서 인턴을 해야 할까? 나를 잘 추천해줄 분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지금 가진 실적으로는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해야 할까? 이 시기엔 무엇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원하는 결과를 제때 낼 수 있을까?

영과고 출신도 아니고, 주변에 박사 유학을 나간 선배도 잘 알지 못했던 저에게는, 이런 질문 하나하나가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준비 과정 내내 끊임없는 질문과 불안이 있었고, 결국 박사 유학 준비란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하나하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런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저보다 먼저 이 길을 간 선배들의 경험에서 답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준비를 시작해보면, 그런 정보는 생각보다 쉽게 얻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이미 유학을 떠나 계신 선배님들의 합격 수기나 조언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했고, 직접 만나뵐 수 있었던 경우에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큰 위안과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아왔기에, 이제는 제가 받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되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박사 과정을 준비하고 합격한 제가 대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도 준비하는 동안 합격한 선배들이 하나같이 대단해 보였고, 나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막 박사 과정을 시작하러 가는 평범한 학부 졸업생일 뿐이고, 제 이야기도 그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길은 정말 다양하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모든 학교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 간절했던 목표를 이룰 수 있었기에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부족함이 많았던 저이기에, "이런 사람도 유학을 가는구나" 하고 참고해주신다면, 그리고 그게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용기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꼭 모범생일 필요는 없잖아요?
 
덧붙이자면, 이 글은 미국 박사 유학을 위한 준비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안내서는 아닙니다. 유학 준비 전반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면, 이미 유학 중이신 선배님들의 정리된 수기들이나 이민아 교수님의 『지금 알려줄게요, 미국대학원』과 같은 책이 훨씬 나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대신 이 글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촉박한 일정과 부족한 준비 속에서도 어떻게든 유학 지원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한 학생의 경험으로서,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참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응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기는 기록입니다.
 
익명성을 전제로 쓴 글은 아니기에, 이 글을 통해 저를 알아보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아는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려 반가운 인사를 전합니다. 또 이 글을 통해 저를 처음 알게 되신 분께서 나중에 유학을 나오시게 된다면, “글 읽었다”고 편하게 인사해주셔도 정말 반가울 것 같습니다.
 
 
목차
1.      지원 결과
2.      개인 이력
3.      준비 타임라인
4.      학점에 관해
5.      합격률에 관해
6.      실적에 관해
7.      추천서에 관해
8.      SoP / PS에 관해
9.      랩서치에 관해
10.   장학금에 관해
11.   컨택에 관해
12.   TOEFL / GRE에 관해
13.   인터뷰에 관해
14.   선발 과정에 대해
15.   합격 이후
16.   소소한 팁들
17.   이번 사이클에서의 특이사항 및 미국 내 불확실성
 
지원 결과
서두가 길었기에 결과부터 공유드립니다.
 
분야: ML Systems, Hardware/Software Codesign

합격:
-      Cornell University
-      UCSD
-      University of Michigan
-      University of Maryland
-      Harvard University
 
불합격:
-      MIT
-      Stanford University
-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      Georgia Tech
-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대략 CS 분야에서 유명한 탑 15개 대학 정도에서 연구 분야 및 개인 선호를 반영하여 10개 대학을 추려서 지원하였고, 이 중 절반인 5 곳에 합격하였습니다.
 
합격한 대학 중 Maryland의 경우에는 공식 합격 레터를 받기 이전에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는 대학의 오퍼를 받은 관계로, 컨택하던 교수님께 미리 진학 포기 의사를 밝혔습니다.
 
지원했던 대학 모두 합격 시 감사히 가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했던지라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연구 핏과 지도교수, 또 지역을 고려하여 Cornell, 특히 뉴욕시에 있는 Cornell Tech 캠퍼스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개인 이력
지원서 제출 시점의 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판물:
-      ICML 2저자 (oral)
-      IEEE VIS short paper 5저자
-      TVCG 4저자, under review
-      OSDI 공동 1저자, under review
연구 경험:
-      인턴 1년
-      UROP 7개월
학점: 3.7x / 4.3
토플: 117
GRE: 164 / 170 / 4.0
이외 교내외 자잘한 대회들 시상경험 존재.
 
탑 컨퍼런스 1저자 논문을 여럿 갖고 지원하는 어마무시한 스펙의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결정적으로 (공동) 1저자 경험이 있는 것을 높게 쳐 주지 않았을까 예상해봅니다. 지원 시점에서 OSDI가 이미 붙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후술할 듯이) 급하게 준비한 상황에서 이 정도라도 스펙을 만들어서 목표하던 대학들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준비 타임라인
컴공 입학 당시부터 박사 유학을 막연하게 꿈꿨지만, 2학년을 마치고 군 복무를 하는 기간까지도 세부 분야를 좁히지 못하며 고민을 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인턴과 연구 실적을 쌓을 소중한 시간을 많이 날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절대 스누포 때문 아님). 저는 3학년부터 UROP를 통한 연구를, 또 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인턴 생활을 시작했는데, 유학 준비를 하시는 후배분들에게는 기회가 된다면 이보다 일찍 시작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분야가 고민된다면 고민할 시간에 하나씩 그냥 직접 인턴 해보세요!)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학번, 22년 9월 전역)
23년 상반기
-      UROP, 페이퍼 두 개 실험 참여
 
23년 하반기
-      인턴 시작
 
24년 상반기
-      인턴 계속
-      추천인 확보 시작
-      장학금 서치 / 지원준비
-      토플 응시
 
24년 하반기
-      추천인 확정
-      개인 홈페이지 제작
-      지원 목록 확정
-      랩 서치
-      컨택
-      SoP, PS 작성
-      GRE 응시
-      졸업논문 작성
-      지원서 제출
 
25년 상반기
-      인터뷰 (상세 타임라인은 후술)
-      학부 졸업
-      합격 이후 미국 비지팅
-      합격 후 장학금 지원
-      예방접종, 집 구하기, 공식 성적표 발송 등등등
 
25년 하반기
-      출국 예정
 
먼저 이 타임라인은 전혀 모범적이지 않음을 재차 말씀드립니다. 오히려 벼락치기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서를 접수한 2024년 12월로부터 불과 1년 전인 23년 말에는 출판물이 겨우 short paper 5저자 하나뿐인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상황이었고, 1년 만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박사 유학은 꿈도 꾸지 못할 것만 같아 자비 석사 혹은 국내 석사 이후 재지원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교수님과 좋은 사수님, 시의적절한 타이밍과 다량의 운이 더해진 결과 지원 전 1년의 짧은 시간 동안 두 편의 논문을 추가로 쓸 수 있었고, 세 명의 추천인을 확보해 성공적으로 원서 지원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랩 서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시작하는 것을 추천드리며, SoP와 PS 또한 여름부터 미리 작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모두 다 11월에 했습니다 ㅠㅠ)
 
컨택은 저처럼 조금 늦어져도 큰 문제 없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11월에 했습니다). 저의 경우, 컨택 직후 인터뷰를 진행하고 합격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기에, 입시 시즌 직전에 본인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가을 즈음 연락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 영어 점수는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TOEFL 및 GRE를 전혀 준비 없이 응시했고 이 덕에 시간 단축이 조금 된 것 같습니다. 목표 점수를 만들어야 한다면 각 시험의 준비 기간이 더해질 것 같습니다. 또 후술하겠지만 GRE는 필요하지 않다면 과감히 버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학점에 관해
학점 때문에 유학을 포기해야 할까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다른 어떤 정보보다 이 이야기를 먼저 전하고 싶었습니다. 유학 준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가장 많은 분들이 던지는 질문이자, 또 가장 많은 분들이 일찌감치 지원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겁니다:
 
“유학 가려면 학점이 얼마여야 하나요?”
 
누군가는 과 수석에 가까워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GPA가 4점대는 되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3점대 후반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질문의 정답은 특정 숫자가 아니라 ‘당신을 뽑으려는 교수님 마음에 들면 된다’ 입니다.
 
저는 다른 유학 준비생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학점이었지만, 지원한 학교의 절반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사실 지도교수 입장에서 박사과정의 선발은 결국 좋은 연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찾는 과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 입시는 “내가 어떻게 좋은 연구자로 보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학점은 그런 경쟁력을 보여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유학 가려면 학점이 얼마여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마치
‘서울대 가려면 하루에 몇 시간 공부해야 하나요?’
와 비슷한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학점이 정말 좋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장점이 됩니다. 특히 커미티 중심의 스크리닝이 활발한 일부 최상위권 학교들에서는 학점까지 좋은 학생들을 뽑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탑 10 진학이 목표인 경우에도, 이 정도 학점으로도 뽑힐 수 있구나 하고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저처럼 성적 관리에는 약하지만, 연구와 프로젝트에 더 열정을 가진 분들이라면, 학점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을 종합적으로 어떻게 매력적인 연구자로 보이게 할지에 더 집중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합격률에 관해
많은 분들이 컴공 박사 유학을 최상위권 일부만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로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학점이나 실적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유학을 나가는 학생들 중 상당수가 과 수석이나 차석에 가까운 성적인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게 유일한 박사 유학의 방법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 역시 학점으로는 최상위권과 거리가 좀 있고, 이게 박사 지원의 큰 약점이 될까봐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박사 입시는 한 사람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점이 부족하더라도 다른 강점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고, 실제로 주변 합격생들을 보아도 모두가 4점대의 학점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논문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도 많이들 하시지만, 이 역시 컴공 내에서의 세부 분야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논문이 활발하게 나오는 분야라면 박사 입시가 실적 싸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라면 탄탄한 연구 경험과 강력한 추천서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이번 비지팅에서도 논문 실적이 없는 학생들도 여러 명 만났고, 이런 분들은 논문 외의 인턴 및 연구 경험으로 본인의 잠재력을 충분히 드러낸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변수로는, 장학금 보유 여부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미국 내의 펀딩 상황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장학금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학생이 박사과정을 통해 좋은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줄 수 있는가의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학점이나 실적 면에서 평범하거나 부족하다고 느껴지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본인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면 박사 유학을 아예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다 건너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국인 학생을 뽑아야 하는 교수 입장에서, 본인이 어떻게 리스크가 적고 투자할 만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합격률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추가로, 시간이나 비용의 여유가 있다면 자비 석사 유학을 통해 박사 진학을 준비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석사 과정은 교수의 펀딩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으며, 이후 미국 교수님의 추천서를 확보하거나 현지에서 연구 기회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코스워크 중심의 미국 석사에서 연구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따로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좋은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여러 교수님들이 조언해주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본 수기에 덧붙이는 이유는, 준비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비관적인 이야기들 때문입니다. 저 역시 ‘혹시 전부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속에서 원서를 냈고, 그런 생각이 준비 내내 발목을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사 유학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 돌아가는 길도 있고, 저마다의 상황에 맞는 전략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건 그 가능성을 너무 일찍 닫아버리지 않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합격률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했으니 숫자를 말하자면, 우선 저의 경우 총 10개 학교에 지원했고, 그중 5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아 50%의 합격률을 기록했습니다. 인터뷰는 총 6개 학교에서 진행했으며, 총 10명의 교수님과 12번의 세션을 가졌고, 이 중 5개의 학교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인터뷰까지 갔다면 대략 2, 3배수의 후보군에 들어간 경우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한 교수님께서 인터뷰를 20명 가까이 진행했다고 말씀하신 걸 보면 학교나 교수에 따라 더 많은 수를 인터뷰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교수님이 한 해에 2-3명 정도의 박사과정 학생 선발을 목표로 하고, 등록률이 보통 30-4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에 맞춰 인터뷰 인원이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제 개인적인 합격률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번엔 주변 사례를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학교에서 학부 졸업 직후 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에 다이렉트로 지원한 학생 자체가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이 때문에 합격자 수만 놓고 보면 미국 박사 진학이 매우 어려운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애초에 지원자 수가 적은 구조이기에 체감 경쟁률이 과도하게 높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번 사이클에 박사 지원을 함께 준비한 컴공 동기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반면 컴공과 전기정보를 합쳐 학부에서 바로 박사 과정에 합격한 학생 수는 5-10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숫자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지원자 대비 합격률이 꽤 높은 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본인의 합격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싶다면, 다양한 선배들의 합격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진학을 희망하는 연구실의 박사과정 학생들을 찾아보고, 그들의 CV를 참고해보면 연구 성과나 경력의 방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각 학교에서 박사과정 입학생 통계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으니 참고 바랍니다.
 
실적에 관해
실적은 앞서 언급했듯이 세부 분야에 따라 요구되는 수준이 꽤 다릅니다. 제 경우에는 출판된 논문이 2편 있었고, 리뷰 중인 논문이 2편 더 있었습니다. 이 중 하나는 공동 1저자 논문이었고, preprint가 공개된 상태였기 때문에 인터뷰나 SoP에서 내용을 상세히 다룰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학하게 된 ML Systems 분야의 경우, 논문 실적 없이도 합격한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논문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본인의 관심 분야가 어떤 성격을 갖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분야의 실적 수준을 가늠하려면 실제로 그 분야에 진학한 선배들의 CV를 찾아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종류의 연구 경험이 강조되는지, 어떤 컨퍼런스 실적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본인의 방향 설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추천서에 관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추천서 세 장을 요구합니다. 저는 한 장을 인턴 기간 중 두 편의 논문을 함께 쓴 교수님께, 또 한 장을 UROP에서 두 편의 논문 실험에 참여하며 함께한 교수님께 받았습니다. 마지막 한 장은 학부 수업의 기말 프로젝트에서 1등을 했던 교수님께, 졸업 논문을 지도받으며 부탁드렸습니다.
 
추천인은 가능한 한 일찍 확보하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습니다. 교수님께 면담을 요청드리고 정중히 부탁드리는 과정은 본인의 재량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교수님이 요청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써주셔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점은 유의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 세 교수님 모두 지원하는 해의 6월-9월 사이에 면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추천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좋은 추천서란 무엇인지, DWIC(Did Well in Class) 추천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단순히 개수 채우는 용이다… 등등 추천서에 대한 내용은 여러 자료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추천서를 부탁드리며 제가 했던 방식 중 하나는, 추천서를 수락해주신 교수님들께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지원 현황과 학교별 데드라인, SoP, CV 등의 기본 자료를 공유드리고, 수시로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제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를 상세히 정리해 전달해드렸습니다.
 
추천서 관련해서 미국 비지팅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한 중국 유학생이 말하길 중국에서는 박사 유학 준비 과정에서 미국에서 인턴이나 교환학생을 하며 미국 교수의 추천서를 받는 것이 사실상 필수 전략처럼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이런 방식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천서는 박사 지원 서류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동시에 세 명의 교수님을 설득하고 관계를 쌓아야 하는 일이기에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하게, 그리고 일찍 준비해두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은 지원자였기에, 특히나 추천서가 제 합격에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정성껏 추천서를 작성해주신 교수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SoP / PS에 관해
마찬가지로 급하게 11월 말에 준비했습니다. 두 글에서 제가 중점으로 둔 것은, 글이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서류는 이미 CV가 있습니다). 지금껏 제가 겪어온 여러 경험으로부터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그려내려고 노력했고, 방향성을 가진 연구자처럼 보이도록 노력한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연구 내용은 적당히 곁들여 설득력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SoP의 경우 작성 과정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는 것 같아, 미리 작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CS 분야에서 여러 합격자들의 SoP를 모아둔 자료로는 cs-sop.org가 있습니다. SoP의 경우 사람마다 각기 스타일이 다르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여러 예시를 보고 감을 잡으시길 바랍니다.
 
또 학생을 선발하는 교수의 입장에서 SoP와 PS는 지원자의 작문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이므로, 조리있게 잘 작성되었는지 점검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공계라고 해도 결국 논문을 쓰는 것은 영어 작문이다 보니 무시하지 못할 요소인 것 같습니다.
 
PS는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상세히 읽어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저에게 오퍼를 주신 교수님께서는 인터뷰 전에 이미 읽어보시고 내용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본인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작은 플러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랩서치에 관해
랩 서치는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학교마다 교수진이 수십에서 많게는 100명이 훌쩍 넘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확인하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훅 지나갑니다. 단순히 교수님의 연구 분야만 살펴보는 게 아니라, 최근에 어떤 논문을 쓰셨는지, 학생을 새로 뽑을 계획이 있는지, 연구실 홈페이지가 최신화되어 있는지, 컨택을 받는다는 안내가 있는지 등등 확인해야 할 게 정말 많습니다.
 
박사 유학은 결국 자신과 핏이 잘 맞는 랩을 찾는 과정이고, 이 랩 서치가 합격률과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떻게 하면 합격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했고,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았습니다.
 
저는 교수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전수조사에 가깝게 랩 서치를 진행했습니다. 관심 있는 학교의 교수진 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훑으며, 연구 분야, 최근 논문, 학생 선발 여부, 홈페이지 정보 등을 일일이 확인했고, 엑셀로 정리하면서 컨택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지만, 그만큼 자신 있게 지원서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비교적 급하게 준비하면서 학교 리스트를 먼저 정하고, 그다음 각 학교의 연구실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평소 인상 깊게 읽었던 논문을 쓴 연구실이나, 본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연구를 수행 중인 그룹들을 먼저 정하고, 그 연구실이 속한 학교를 찾아나가는 순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쪽이 훨씬 자연스럽고 본인에게 맞는 선택지를 좁혀갈 수 있는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
 
랩 서치는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입니다. 마감 직전에 몰아서 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고 꽤 큰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합니다. 특히 관심 있는 연구실을 미리 찾아두면, 그에 맞춰 준비 방향을 잡는 데도 훨씬 유리합니다. 저처럼 11월에 시작하면 정말 벅차고 정신이 없을 수 있으니, 여유 있을 때부터 조금씩 해두시기를 꼭 권합니다.
 
장학금에 관해
합격 전후로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들이 여럿 있습니다. 특히 합격 전 장학금은 생각보다 지원 시기가 빠르기 때문에, 놓치지 않도록 미리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지원 연도의 봄쯤에 마감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장학금 없이 합격했기 때문에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장학금이 합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요즘처럼 펀딩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분명 경쟁력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주 드물게 펀딩 없이 박사 오퍼만 주어지거나, waitlist에 올라 있는 경우에는 장학금이 판세를 뒤집는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비록 저는 합격한 장학금이 없었지만, 지원 과정에서 SoP나 추천서 등의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준비 자체만으로도 나중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컨택에 관해
컨택이 필수인지 아닌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상황도 제각각이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경험상, 컨택은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활동이었습니다. 관심 있는 교수님께 본인을 알릴 수 있고, 교수님 입장에서도 지원자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경우에 따라 인터뷰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다만, 모든 교수님이 컨택을 반기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는 연구실 홈페이지에 컨택을 지양해달라고 명시해 두거나, 합격 이후에만 연락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합니다. 따라서 무작정 보내기보다는 해당 교수님의 홈페이지와 연구실 안내를 꼼꼼히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컨택은 학회 등 대면 만남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러 가는 경우, 미리 참석 명단을 확인해 관심 있는 교수님께 커피챗을 요청하면 30분 정도 직접 이야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쁜 교수님이라도 학회 현장에서는 비교적 시간을 내주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외 대부분의 경우는 cold mail을 통해 컨택을 하게 됩니다. 저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개인 홈페이지 링크만 포함한 짧은 메일을 보냈고, CV는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총 30여 명의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고, 그중 10여 분께 답장을 받았습니다. 답장 내용은 단순히 “지원해봐라”는 정도에서부터 구체적인 조언이나 인터뷰 제안까지 다양했는데, 이 짧은 답장들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해당 연도에 학생을 뽑을 예정인지, 어떤 연구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었고, 심지어 곧 학교를 옮기실 예정이라는 식의 중요한 정보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컨택은 단순히 본인을 어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입시 전략을 구체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일정이 겹쳐 컨택 준비가 많이 늦어졌고, 결국 지원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11월에야 컨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걱정도 많았지만, 예상보다 많은 답장을 받을 수 있었고, 그중 일부는 실제 인터뷰로도 이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교수님들 입장에서도 이전 학기 입학생들이 랩에 합류하고 정리된 9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다음 학년도 학생 선발을 고려하기 시작하시는 경우가 많았기에, 늦은 시점이 오히려 시기적으로도 괜찮았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 교수님과는 컨택 → 인터뷰 → 합격으로 이어진 경험도 있었고, 반대로 현재 진학하게 된 랩의 교수님은 제가 보냈던 컨택 메일에 직접 답장도 주셨지만, 나중 인터뷰에서는 저를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만큼 교수님들은 많은 메일을 받으시고 매우 바쁘시기 때문에, 컨택을 안 해서 떨어졌다는 식의 해석은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컨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합격에 유리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정보를 얻고 교수님과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는 활동입니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본인의 상황에 맞춰 가볍게 시도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TOEFL / GRE에 관해
저는 어릴 때 외국인학교에 다녔던 경험이 있어서 별도의 영어 준비는 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각 학교에서 제시하는 컷라인(보통 TOEFL 100점 이상)을 넘기면, 영어 점수는 합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일부 학교는 TA 자격 요건으로 speaking 점수 기준을 따로 두기도 하고, 미달 시 별도의 시험을 보게 하기도 하므로, 여러 번 응시했을 경우 speaking 점수가 높은 쪽을 제출하는 것이 좋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RE는 제가 지원한 대부분의 박사 프로그램에서 받지 않거나 optional이었습니다. 석사 지원을 병행할 예정이거나, 별도 준비 없이 시험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치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부 학교에서 “좋은 GRE 점수는 플러스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안내를 본 뒤, 하루 정도 가볍게 공부하고 시험을 본 뒤 몇 군데에 제출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약간 돈이 아깝기도 합니다.
 
인터뷰에 관해
원서 지원까지 무사히 마치셨다면, 오매불망 인터뷰를 기다리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유학 원서 지원까지의 준비 자료는 비교적 많은 것에 비해, 원서 제출 이후의 과정에 대한 자료는 상대적으로 찾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제 경험을 위주로 인터뷰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인터뷰를 기다리면서 제일 궁금한 부분은, 언제쯤 인터뷰 요청이 오고 언제쯤 합격 레터가 오는지입니다. 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공개된 정보 중에는 GradCafe가 제일 유명합니다. 학교마다 rolling basis로 합격자를 선발하는 경우도 있고, 한날 한시에 합격자 전원에게 레터를 발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지난 몇 해 동안의 GradCafe 기록을 살펴본다면 대략적인 날짜를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 경험상 꽤나 정확했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학교들의 구체적 인터뷰 타임라인은 아래 ‘선발 과정에 대해’ 단락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인터뷰 합격률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의 경우 인터뷰를 진행한 학교는 스탠포드를 제외하고 전부 합격했습니다. 다른 선배님들의 수기 등을 보면 2~3배수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생각되나, 꼭 정해진 방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요청은 보통 이메일로 오며, 교수와 학생이 가능한 시간을 조율하게 됩니다. 인터뷰의 형식은 일반적으로 1. 자기소개 2. 교수의 질문 3. 학생의 질문 순서로 진행되며, 총 소요 시간은 30분 내외, 온라인 영상통화로 진행됩니다. 저의 경우 자기소개를 위해 핵심 연구 내용이 포함된 슬라이드를 짧게 준비하였고, 교수님의 질문에 효과적으로 대답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많이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또 각 교수님마다, 랩에서 나온 논문 3~5편 정도를 훑어보고, follow-up 질문을 하거나 미래 연구 주제와의 연결을 짓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또 인터뷰는 연구에 대한 내용 외에도 개인적으로 궁금한 내용 등을 교수님께 여쭤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데, 이 또한 질문 목록을 미리 준비해두면 좋습니다.
 
저의 경우 더 가고 싶었던 학교들의 인터뷰가 시기상 더 나중에 잡힌 관계로, 앞서 진행한 인터뷰들이 실전 연습이 되어… 다행히 중요했던 인터뷰들을 더 잘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본인이 연구한 내용을 자유롭게 설명해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또 질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된다고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최신 논문을 언급하며 기술적인 질문을 하고, 향후 연구 방향에 대한 토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면 함께 연구를 하고 싶은 학생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진행 도중에는 1. 빈출 질문에 대한 대답, 2. 교수님의 논문 요약 및 질문, 3. 해당 학교와 랩실에 대한 질문 등을 띄워두고 진행했습니다. 참고를 위해 대답을 준비해두면 좋은 질문 몇 가지와 교수님께 여쭤볼 수 있는 질문 몇 가지를 아래에 적습니다.
 
빈출 질문
1.    왜 당신이 대체 불가능한 인력인지
2.    박사를 왜 하려고 하는지
3.    왜 미국인지
4.    다른 학교 어디에 지원했는지
5.    가장 자랑스러운 연구 실적이 무엇인지
6.    박사 이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7.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지
8.    연구 분야에서 비판하고 싶은 트렌드가 있는지
 
교수님께 여쭤볼 수 있는 질문
1.    랩 구조/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2.    진행중인 연구 주제가 어떻게 있는지
3.    올해 학생 몇 명 선발을 계획하는지
4.    지도 스타일은 어떤지
5.    인터뷰 이후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인터뷰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인터넷 서치만으로는 알기 힘든 해당 학교와 랩의 속사정들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십분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선발 과정에 대해
제 경험상 크게 1. 위원회 스크리닝 후 교수의 선발이 있는 학교, 2. 각 교수가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나 다른 교수들과도 정보를 공유하며 종합적으로 선발하는 학교, 3. 전적으로 학생을 지도할 교수가 개인적으로 선발을 하는 학교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내린 분류이기에 실제 내부 절차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CS 기준 지원자 수는 학교마다 2000~5000명이고, 보통 3명의 교수를 SoP 혹은 지원서에 언급하기에 한 교수가 검토해야 하는 학생 수는 수백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이력을 기반으로 간단히 shortlisting하는 것 같고, 후보가 많은 관계로 박사과정 학생이 지원서를 검토하며 돕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후 추려진 후보를 대상으로 SoP와 같은 문서를 읽으며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론적인 내용은 공개된 바가 많으니 제가 경험한 학교별 특이사항을 기술하겠습니다.
 
Cornell University: 박사과정 학생이 검토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음. 대부분의 학생은 오퍼에 한 명의 지도교수가 명시되기보다는, 지도 의향을 밝힌 여러 교수의 이름이 들어감 (이에 여러 교수 사이의 discussion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함). 합격 이후 반 공식적인 rotation system이 있어서 최종 지도교수 확정을 보류할 수 있음. 합격 이후에는 Ithaca 본캠과 NYC 분캠 중 지도교수에 따라 캠퍼스를 정할 수 있음. 첫 인터뷰: 1월 22일, 합격: 2월 8일.
 
UCSD: 학생 선발은 각 교수 재량임. 일례로, 이미 합격을 했는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교수가 인터뷰를 청해옴. Rolling basis 합격이라 각 교수가 합격을 결정하면 바로 통보가 되고 지도교수가 확정됨. 첫 인터뷰: 1월 24일, 합격: 2월 5일.
 
University of Michigan: 학생 선발은 각 교수 재량이고, 지도교수가 확정된 상태로 시작함. 여기도 rolling이었던 것 같음. 인터뷰: 12월 10일, 1월 14일, 합격: 1월 21일.
 
University of Maryland: 각 교수 재량으로 추정. 첫 인터뷰: 1월 17일, 비공식 합격: 2월 1일.
 
Harvard University: 교수 재량 추정… 이나 확실치 않음. 첫 인터뷰: 1월 8일, 합격: 1월 30일.
 
Stanford University: 위원회 소속 교수 중 동일 분야의 교수가 1차 인터뷰를 진행함. 1차 인터뷰에서는 학생의 희망 지도교수가 누구인지 물어본 이후, 해당 교수에게 추천을 하겠다고 말씀하심 (연락 해보되 답장 없으면 탈락인 형식). 이후 답장 없음. 첫 인터뷰: 1월 30일, 불합격: 2월 7일.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코넬과 마찬가지로 학생이 스크리닝 작업에 참여함. 여기도 위원회에서 여러 교수의 추천을 받아야 합격하는 시스템이라고 전해들음. 불합격: 3월 20일.
 
Georgia Tech: 학생에게 과제를 내주는 랩 존재. 불합격: 4월 24일.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영영 무소식. 불합격: 4월 11일.
 
가끔 지원서 제출 이후에도 컨택 메일을 한번 더 보내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는 경험담도 들려오니, 만약 지원 이후에 본인의 매력을 높여줄 만한 소식이 있다면 (e.g. 페이퍼 어셉, 장학금 합격) 가볍게 컨택해서 잃을 것은 없어보입니다.
 
합격 이후
첫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자체로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정말로 다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안도와 기쁨이 뒤섞인 감정이었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합격장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오히려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5~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학교, 지역, 그리고 지도교수를 선택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아직 진학을 하지 않은 입장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할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하고 싶은 연구 주제와 생활 여건, 특히 위치적인 장점이 잘 맞는 학교를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지팅 행사가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학교는 3월경에 admitted students visit day, 혹은 open house 같은 이름으로 비지팅 행사를 엽니다. 이 행사는 보통 1. 학교 및 캠퍼스 투어, 2. 연구실 탐방, 3. 교수님들과의 개별 면담, 4. 재학생들과의 패널 및 Q&A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실제로 해당 환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대면으로 교수님을 만나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간혹 (아마 예산 문제로?) 국제학생의 경우 초청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상황이 있었지만, 관심 있는 교수님께 직접 연락을 드렸더니 비지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공식 초대가 없더라도, 개인적으로 문의드려보는 것을 꼭 추천드립니다.
 
행사에 앞서 본인에게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미리 정리해보고, 관심 있는 교수님과 꼭 이야기 나눠야 할 내용을 준비해 가면, 훨씬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입학 여부를 떠나, 이후의 연구생활과 박사과정 전반에 대한 감을 잡는 데에도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에는 본격적으로 진학 결정을 내리고, 관련 행정 절차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가야 했습니다. 입학을 확정한 이후에는 비자 발급, 하우징 계약, 공식 성적표 및 졸업 증명서 발송, 예방접종 기록 제출 등 챙겨야 할 항목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학교 측에서 보내주는 안내 메일이나 포털 내 체크리스트를 잘 따라가면 큰 어려움 없이 마무리할 수 있지만, 간혹 서류 처리에 시간이 걸리거나 추가 제출이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유 있게 준비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소소한 팁들
연구실 사람들 찾아보기
앞서도 언급했지만,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의 연구실 사람들의 CV와 이력을 살펴보는 것은 본인의 합격 가능성을 가늠하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또 연구실 관련 궁금한 사항이 있을 때 연락을 해볼 수 있는 선배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지원서 페이지 미리 열어보기
대부분의 학교는 9월 즈음에 지원서 페이지를 오픈합니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항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어떤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지 미리 확인해두면 전체 지원 과정이 훨씬 명확해집니다. 지원할 학교 명단을 확정짓기 전이라도, 각 학교의 지원 계정을 미리 만들어 하나씩 확인해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또한 일부 학교는 지원서 페이지에 랩 서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 가능 교수 목록’을 함께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는 공식 홈페이지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프로그램 웹사이트만 보지 말고 지원서 페이지까지 직접 열어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 홈페이지 만드세요
CS 분야의 경우 개인 홈페이지를 대부분 만듭니다. 홈페이지를 만들 경우, 이메일에 CV 대신 간단히 첨부할 수도 있고, 본인의 연구 경험을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지원 이후 업데이트들을 반영할 수도 있고, 또 공식 서류에 다 담지 못한 본인의 이야기를 전할 수도 있습니다. 또 부가적인 효과로는, Google Analytics 등을 활용해 어느 학교에서 본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봤는지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학 간 선배를 만났을 때
유학 준비 중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선배를 만났을 경우, 처음에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 지부터 막막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학교에 지원하고 어디에 합격했는지, 학교 선택은 어떻게 했는지, 지원서의 각 서류 준비 과정 중 궁금한 부분에 대해 물어보면 될 것 같습니다. 받아볼 수 있는 자료로는 SoP가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이번 사이클에서의 특이사항 및 미국 내 불확실성
이번 지원 사이클은 예년과 비교해 여러 면에서 유난히 불확실성이 컸던 해였습니다. 특히 지원서 접수 시점과 합격자 선발 사이에 발생한 미국 내 정치적 변화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부 교체 이후 일시적으로 많은 국제학생들의 비자 승인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원상 복구되는 일이 있었고, 일부 학교에서는 펀딩 축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발 인원을 조정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이미 합격 통보를 받은 학생의 입학을 취소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올해 유독 선발 인원이 적었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제가 직접 참여한 비지팅 행사에서도 예년 대비 50~70%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 체감될 정도였습니다. 아직 공식적인 통계가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타격이 있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미·중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중국 국적 학생들의 선발이 예년보다 더 신중하게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상대적으로 한국 국적 지원자는 이러한 제약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는 인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특수 상황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향후 미국 박사 유학의 ‘뉴 노멀’이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처럼 유학이라는 길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불확실성과 함께하는 여정이고, 그 속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며 묵묵히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치며
박사 유학 준비는 누구에게나 불확실하고 버거운 여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선택의 순간들이 계속해서 찾아오고, 그 속에서 스스로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각자의 상황과 강점에 맞춰 조금씩 다르게 접근해도, 결국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제 사례가 작은 증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준비를 하며 정말 뛰어난 분들이 많다는 걸 여러 번 실감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깊은 연구 경험을 가진 분들, 더 오랜 시간 차근차근 준비해 온 분들, 스펙만 봐도 감탄이 나오는 분들을 보며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기도 했고, 그만큼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희미하게나마 느꼈던 건, 박사 과정이 꼭 ‘누가 가장 잘났는가’를 가리는 자리는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이 연구실과 잘 맞는 사람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고, 저도 그 가능성에 기대어 하나하나 도전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비교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더 정확히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어디서 내 경험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어떤 교수님과 이야기가 잘 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움직였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지만, 다행히 그런 방식으로도 열리는 문이 있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방향을 잡아가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신 많은 선배 연구자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직접 만난 분이든, 글과 경험을 남겨주신 분이든, 그런 분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저는 제 길을 조금씩 좁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가능성이 아주 멀지만은 않게 느껴졌고,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실질적인 참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응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유학을 준비하시는 모든 분들께, 자신의 속도로 묵묵히 걸어 나가시길, 그리고 그 노력에 걸맞은 좋은 결과가 함께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언젠가 미국에서, 학회에서, 혹은 세미나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는 꼭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